엔벨로프
한 악기가 내는 소리의 스펙트럼이 일정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음악인들은 악기 연주하는 소리를 들으면 어떤 악기가 연주하는지 알아맞힐 수 있다. 그렇다면 무언가 바순에만 공통적인 음색, 즉 첼로나 트롬본과는 다른 무엇이 있는 것임이 분명하다. 악기의 특징적 음색을 알아맞힐 수 있는 음향적 단서는 어디 있을까? 무엇보다도 우선 악기의 시작 부분을 들 수 있다. 같은 주파수대의 음을 같은 세기로 연주한다고 하더라도, 현으로 켜는 소리와 관을 부는 소리는 첫 시작과 끝부분이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음색에 관해 논의했던 부분은 일정하게 흐르는 주기적인 소리였다. 그러나 이런 상태에 이르기 전의 첫 부분이나 음이 사라져 가는 부분을 편집하여 주기적인 소리만을 남겨 놓으면 악기의 음색을 구별하는 데 커다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음향의 디지털 편집 기술이 보편화되어 어떤 소리도 편집할 수 있는 요즘은 음향 편집으로 다른 악기의 효과를 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악기 소리에 피아노 음색의 사라져 가는 부분의 효과를 첨가하면 마치 피아노 소리와 같이 들린다. 결국 소리가 시작해서 끝나기까지의 진폭 변화 곡선, 즉 엔벨로프 역시 악기의 음색을 구별하는데 좋은 단서가 된다. 따라서 엔벨로프에서는 시간의 차원이 매우 중요하다. 얼마만큼 빨리 첫 시작을 끝내느냐, 얼마만큼 급격하게 소리가 사라져 가느냐 하는 문제 등이 모두 엔벨로프에 담겨있는 정보이다. 음색 지각에 있어 엔벨로프의 중요성을 증병해주는 실험 연구가 있다. 버거는 여러 가지 악기의 음색에서 처음과 마지막 0.5초씩을 잘라내고 30명의 밴드부 학생을 대상으로 실험했다. 우선 악기에 따라 아주 다른 분포를 보였다. 앞뒤가 제거된 플루트 소리를 듣고 알아맞힌 학생은 한명에 불과했고, 오보에와 클라리넷은 엔벨로프의 처음과 끝을 제거해도 많은 학생이 알아맞혔다. 비교적 정답이 많이 나온 악기는 엔벨로프에 별로 중요한 단서가 없고, 오답이 많은 악기는 그 악기의 음색적 특징이 엔벨로프에 많이 담겨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두 번째 실험에서는 테이프를 편집해 첫 부분을 모두 없애버린다. 그럼 전혀 다르게 들렸던 악기들끼리 다 비슷하게 들릴 수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엔벨로프의 첫 부분인 어택동안 파형은 주기적이지 않다. 현악기에서 현과 활이 마찰하는 소리, 관악기를 처음 불 때 공기의 마찰 소리 등을 포함한 소리는 엄밀한 의미에서는 일종의 소음이다. 그러나 이 소음 안에 음색에 관한 단서가 상당히 들어있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비브라토
비브라토가 있느냐 하는 문제도 악기를 알아맞히는 데 중요하다. 실제 연주에 있어서는 음악가들이 한결같이 같은 음높이를, 같은 음량으로 연주하는 것이 아니다. 음악 용어인 비브라토를 음향학적 용어로 서술하자면 음높이의 비브라토는 주파수 변조이고, 음량의 비브라토는 진폭변조라고 할 수 있다. 한편 1초 동안 이루어지는 비브라토의 횟수를 비브라토 주파수라고 하는데 대개 초당 평균 7회이다. 비브라토의 폭은 취 아래로 3%까지 움직이는데, 이는 거의 반음의 영역이다. 이쯤 되면 비브라토와 트레몰로의 경계 설정이 문제가 된다. 비브라토와 트레몰로는 물론 다르지만, 때로는 상호 교환적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일상적인 의미에 있어서 비브라토는 주파수 비브라토를 가리키는데, 주파수 비브라토를 하면 자연히 진폭 비브라토가 생기기 마련이다. 실내의 공명, 그리고 악기의 공명 영향 때문에 진폭 비브라토가 없는 주파수 비브라토란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공명기가 달린 비브라폰의 경우 주기적으로 열렸다 닫혔다 하는데 이는 아주 예외적인 예일뿐, 일반적으로 완전한 진폭 비브라토는 거의 없다. 진폭 비브라토가 비브라토의 목적인 경우는 거의 없고, 주파수 비브라토에 수반되는 결과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비브라토를 함으로써 생기는 부수적인 효과는 주파수가 약간 틀리는 것을 덮어준다는 점이다. 실제 연주에서 녹음된 결과들에 나오는 비브라토의 폭이나 주파수가 일정한 경우는 거의 없고 음이 지속되는 동안 한가지 변수가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비브라토를 고정한 전자악기의 소리는 인공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음색의 연구와 문제점과 현황
음색에 대한 많은 부분이 아직도 우리에게는 미지의 것이고, 그 이유의 많은 부분이 음색을 측정하는 잣대를 만드는 어려움에 기인한다. 그런데도 음색에 대한 느낌을 수가 아닌 것으로 표현하는 것은 과학으로서 음향학이 허용할 수 없다. 수치화하고자 하는 과학자들의 노력과 다른 차원 성이라는 음색의 특징이 만날 수 있는 지점이 바로 다차원적 잣대를 이용하는 것이다. 만약 음색이 주파수나 진폭과는 달리 1차원적 잣대로 수치화될 수 없다면 3차원적 공간에 놓고 수치화해 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차원상의 문제들이 해결되었다 하더라도 남아있는 의문점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예를 들어 트랜지스터 라디오에는 스펙트럼의 일부분, 특히 저음이 많이 손상되게 마련인데 이를 통한 소리를 듣고도 우리는 어떻게 음색을 알 수 있을까? 음역에 따라 스펙트럼이 다른데 어떻게 스펙트럼이 바뀌어도 같은 악기라는 것을 모든 음역에서 알 수 있을까? 포르테로 연주한 곡을 작게 듣는 것과 피아니시모로 연주한 곡을 크게 들으면서 어떻게 본래 연주의 음량을 상상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속삭이는 소리를 크게 듣는 것과 외치는 소리를 작게 듣는 것의 음색적 차이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 모든 능력은 우리가 이미 하는 일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알고 구별하는데 다만 우리가 어떻게 이런 일들을 하는지 그 방법을 알아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음색에 대한 연구 중 많은 부분은 음향 그 자체에 대한 연구라기보다는 어쩌면 인간에 대한 연구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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